
Editor's Note
- 성인 ADHD의 실행 기능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인공 전두엽'으로서의 외부 도구 활용 중요성 강조
- 시간 실명 극복을 위한 아날로그 타이머 활용과 내담자 맞춤형 플래너 선택 가이드 제시
- 실패를 대하는 인지적 재구조화를 통해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지속 가능한 실행력을 기르는 코칭 전략
"선생님, 이번 주에는 정말 플래너를 쓰려고 했는데, 플래너를 어디 뒀는지 찾는 데만 30분이 걸려서 결국 포기했어요."
상담실에서 성인 ADHD 내담자를 만나는 선생님들이라면 이와 같은 하소연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매 회기마다 그들은 변화를 간절히 원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만, 다음 회기에는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또 실패했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사 역시 무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상담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왜 통찰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는 내담자의 의지 문제도, 선생님의 상담 능력 부족도 아닙니다. 이는 전두엽의 사령탑인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의 오작동, 특히 **'시간 실명(Time Blindness)'**과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의 결함 때문입니다. 많은 연구 결과들은 성인 ADHD 치료에 있어 약물 치료와 병행된 인지행동치료(CBT),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 코칭이 가장 효과적임을 시사합니다. 내담자의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들을 외부 도구(플래너, 타이머)로 끄집어내는 '외부화(Externalization)' 과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오늘 우리는 상담실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행 기능 향상 코칭법**을 깊이 있게 다뤄보려 합니다. 내담자가 도구 사용에 실패했던 이유를 분석하고,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타이머 및 플래너 활용 전략을 통해 상담의 효능감을 높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실행 기능의 이해: 왜 그들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가?
성인 ADHD 전문가 러셀 바클리(Russell Barkley) 박사는 ADHD를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의 문제(Performance Deficit)"라고 정의했습니다. 내담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Knowing what to do)는 알지만, 그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수행(Doing what you know)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따라서 상담의 목표는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비계(Scaffolding)'**를 설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플래너와 타이머는 단순한 문구류가 아닙니다. 손상된 실행 기능을 보완해 주는 **'인공 전두엽(Prosthetic Frontal Lobe)'**으로서 기능합니다.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이 도구들이 왜 필요한지 신경심리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Psychoeducation), 거부감 없이 일상에 통합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많은 내담자가 과거의 실패 경험으로 인해 도구 사용 자체에 트라우마나 수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시각화(Visualizing Time): 아날로그 타이머의 힘
ADHD 내담자들은 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를 '시간 실명'이라 합니다. 디지털 시계(예: 14:30)는 현재 시각만 알려줄 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시간의 양(Volume of Time)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아날로그 타이머**입니다.
임상 현장에서 제안할 수 있는 구체적인 코칭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예측 시간 vs. 실제 소요 시간 기록하기: 내담자가 특정 과업(예: 설거지, 보고서 작성)에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 시간과, 타이머를 켜고 실제로 수행한 시간을 기록하여 비교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소요 시간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갭(Gap)을 줄이는 것이 메타인지 향상의 핵심입니다.
- 뽀모도로 기법의 변형: 전형적인 25분 집중/5분 휴식이 ADHD 내담자에게는 너무 길거나 짧을 수 있습니다. 내담자의 현재 집중력 수준에 맞춰 '10분 집중/2분 휴식'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성공 경험'을 제공하세요.
외부 기억 저장소 구축: 플래너 활용의 기술
작업 기억력이 약한 내담자에게 "머릿속으로 기억하세요"는 고문과 같습니다. 모든 정보는 즉시 외부 저장소(플래너)로 옮겨져야 합니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복잡한 플래너는 오히려 인지 부하를 일으킵니다.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시스템을 제안해야 합니다.
다음은 내담자의 성향에 따른 도구 선택 및 코칭 가이드라인입니다. 이를 통해 내담자에게 적합한 방식을 함께 탐색해 보세요.
실패를 다루는 태도: 완벽주의 내려놓기
플래너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법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ADHD 내담자들은 "플래너를 3일 쓰다가 하루 빼먹었으니, 이번 달은 망했어"라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 사고에 빠지기 쉽습니다. 상담사는 이 지점에서 인지적 재구조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플래너의 빈칸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그날은 계획보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필요했던 날임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라고 말해주십시오. 다시 시작하는 것(Restart)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야말로 상담사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코칭입니다. '돌아오는 탄력성(Resilience)'을 기르는 것이 목표이지, 완벽한 기록이 목표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합니다.
결론: 내담자의 '실행 비서'가 되어주는 스마트한 상담 환경 구축하기
성인 ADHD 내담자의 실행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담자는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며,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있습니다. 상담사는 이 과정에서 내담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페이스 메이커'이자,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하는 '거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ADHD 내담자들은 상담 시간 내에 얻은 통찰이나 합의한 '숙제(Action Item)'를 상담실 문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상담사가 "지난번에 ~하기로 했었죠?"라고 묻는 것은 때로는 추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AI 기반 상담 기록 및 축어록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상담 내용을 자동으로 텍스트화하여 내담자가 약속한 실행 과제나 스스로 깨달은 핵심 문장을 정확하게 추출해 둔다면, 다음 회기에 더욱 명확하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Action Item] 이번 주, 상담 선생님들을 위한 실천 제안:
- 내담자와 함께 '타이머 10분 설정하고 상담 기록 정리하기'를 상담 세션 막바지에 실제로 수행해 보세요. 도구 사용의 모델링(Modeling)이 됩니다.
- 내담자가 자주 사용하는 플래너 앱이나 노트를 직접 사용해 보고, 장단점을 파악하여 구체적인 팁을 준비해 보세요.
- 상담 기록의 효율성을 높이고 내담자의 발화 패턴(예: "모르겠어요", "나중에" 등의 빈도)을 분석하기 위해 최신 AI 기록 도구의 도입을 검토해 보세요.
도구는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적절한 도구와 상담사의 따뜻한 코칭이 만날 때, ADHD 내담자의 혼란스러운 시간은 비로소 정돈된 일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