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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기 싫어요" - 정신과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내담자와의 대화법

"선생님, 저 약 끊었어요"라는 내담자의 저항을 치료 동맹으로 바꾸는 전문가의 약물 상담 전략과 구체적인 대화 기술을 확인해보세요.

Decembe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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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내담자가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심리적 기제와 자아 정체성 위협 등 이면의 메시지 분석

  • 지시적인 설득 대신 동기 강화 상담(MI)을 통한 협력적 탐색 및 치료적 동맹 형성 전략

  • 결정 균형표 작성과 약물 실험 재정의 등 임상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3가지 실무 솔루션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내담자가 해맑은 표정, 혹은 결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때, 상담사의 마음은 덜컥 내려앉곤 합니다. "선생님, 저 이제 약 안 먹으려고요. 약 먹으면 제가 아닌 것 같아요." 내담자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투정이나 불평이 아닙니다. 이는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의 치료적 관계(Therapeutic Alliance)를 시험하는 중요한 순간이자, 상담사가 임상적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많은 상담 전문가들이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내담자를 만날 때 딜레마에 빠집니다. 우리는 의사가 아니기에 약을 처방할 수도, 강제로 복용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약물 비순응(Non-adherence)은 증상의 재발, 상담 효과의 저하, 심지어는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는 내담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임상적으로 필요한 약물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요? 단순히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죠"라는 설득을 넘어, 내담자의 저항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역동을 이해하고 다루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figure><table><caption>내담자가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주요 심리적 원인</caption><thead><tr><th>주요 원인</th><th>심리적 배경 및 내용</th></tr></thead><tbody><tr><td>부작용 우려</td><td>졸림, 소화불량 등 신체적 불편함과 일상생활의 지장에 대한 거부감</td></tr><tr><td>자아 상실감</td><td>약물이 자신의 고유한 성격이나 감정을 억제하여 '진짜 모습'을 잃는다는 두려움</td></tr><tr><td>병식 부족</td><td>자신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음</td></tr><tr><td>낙인 효과</td><td>약물 복용이 자신을 '정신 질환자'로 낙인찍는다고 생각하여 회피함</td></tr></tbody></table></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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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거부,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메시지 읽기

내담자가 약물 복용을 거부할 때는 표면적인 이유(졸림, 소화불량 등) 뒤에 더 깊은 심리적 욕구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상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단순한 '지시 불이행'이 아니라 통제감(Sense of Control)을 회복하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정신 질환이나 심리적 고통으로 인해 삶의 통제권을 잃었다고 느끼는 내담자에게, 약을 거부하는 행위는 "내 몸과 마음은 내가 결정한다"는 선언일 수 있습니다.

  1. 자아 정체성의 위협과 방어 기제

    많은 내담자, 특히 기분 장애나 조현병 스펙트럼의 내담자들은 약물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지워버린다고 느낍니다. "약 먹으면 멍해져서 바보가 되는 기분이에요"라는 호소는 약물 부작용에 대한 호소임과 동시에, 고유한 자아(Self)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의 표현입니다. 이때 상담사가 약물의 필요성만을 강조하면, 내담자는 상담사를 '나를 지우려는 세력'으로 인식하여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2. 질병 이득(Secondary Gain)과 변화에 대한 양가감정

    역설적이게도 증상이 내담자에게 주는 안도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증 삽화가 주는 고양감이나 에너지를 약물이 차단할 때, 내담자는 이를 '치료'가 아닌 '상실'로 받아들입니다. 프로차스카(Prochaska)의 변화 단계 이론에 따르면, 약물 거부는 변화에 대한 양가감정(Ambivalence)이 극대화된 상태입니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내담자가 느끼는 상실감을 충분히 다루어주는 것입니다.

  3. 상담사와의 관계성(Transference) 문제

    때로는 약물 거부가 상담사나 주치의에 대한 부정적 전이(Negative Transference)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권위적인 인물에 대한 반감이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약물 거부라는 행동화(Acting out)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약물 거부 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상담 관계 자체를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득보다 강력한 '협력적 탐색': 대화 전략 비교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내담자와 대화할 때, 상담사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전통적인 '의학적 모델'에 기반한 지시적 접근보다는, 내담자의 관점을 수용하며 동기를 강화하는 '동기 강화 상담(Motivational Interviewing)' 접근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아래 표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의 차이를 비교하여 보여줍니다.

<figure><table><caption>약물 거부 내담자에 대한 상담 접근 방식 비교</caption><thead><tr><th>구분</th><th>지시적/교육적 접근 (비권장)</th><th>동기 강화/협력적 접근 (권장)</th></tr></thead><tbody><tr><td><strong>상담 목표</strong></td><td>약물 복용 순응 (Compliance)</td><td>치료적 동맹 및 자율적 선택 (Adherence)</td></tr><tr><td><strong>상담사의 태도</strong></td><td>전문가적 권위, 설득, 교정</td><td>호기심, 공감, 파트너십</td></tr><tr><td><strong>내담자의 저항</strong></td><td>저항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td><td>저항은 탐색해야 할 정보이자 신호</td></tr><tr><td><strong>주요 대화법</strong></td><td>"약 안 드시면 재발해요." (위협/경고)</td><td>"약 안 드시는 게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개방형 질문)</td></tr><tr><td><strong>예상 결과</strong></td><td>일시적 복용 혹은 관계 단절, 거짓 보고</td><td>내적 동기 형성, 신뢰 관계 강화</td></tr></tbody></table></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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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에서 바로 적용하는 3가지 상담 솔루션

내담자의 저항을 다루는 것은 섬세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상담사가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화 전략과 개입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결정 균형표(Decisional Balance)' 활용하기

    내담자와 함께 약을 먹을 때와 먹지 않을 때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담사가 답을 유도하지 않고, 내담자가 약을 끊고 싶어 하는 이유(단점)를 충분히 타당화(Validation)해주는 것입니다. "약 먹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게 정말 싫으셨군요.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해요."라고 공감해줄 때, 내담자는 비로소 약을 먹었을 때의 장점(안정감, 수면 개선 등)을 스스로 이야기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2. 약을 '실험(Experiment)'의 도구로 재정의하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내담자를 압도합니다. 대신 "앞으로 2주만 약을 먹었을 때와 안 먹었을 때의 기분 변화를 관찰해보는 실험을 해볼까요?"라고 제안해 보세요. 이는 약물 복용을 '복종'이 아닌 내담자가 주체가 되어 수행하는 '자기 관찰 프로젝트'로 프레임(Frame)을 전환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기분 기록지나 상담 일지는 매우 훌륭한 치료 자료가 됩니다.

  3. 정확한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 다리 놓기

    내담자가 주치의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상담사에게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담자의 동의를 구한 후, 내담자가 느끼는 구체적인 부작용이나 거부감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혹은 내담자가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어떻게 질문하면 좋을지 리허설(Rehearsal)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는 내담자에게 효능감을 부여하고, 다학제적 치료 팀(Multidisciplinary Team)의 기능을 강화합니다.

정교한 기록이 만드는 치료적 통찰

약물 거부와 같은 민감한 이슈를 다룰 때, 상담사는 내담자의 미묘한 언어적 뉘앙스와 비언어적 단서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약 먹기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에도 '두려움', '분노', '귀찮음' 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거부 의사를 밝힌 정확한 맥락과 그때의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것은 다음 회기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임상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근 많은 전문가들이 AI 기반 상담 기록 및 축어록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상담 중 오고 간 대화를 정확한 텍스트로 변환하고, 내담자가 약물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였던 저항의 강도나 반복되는 패턴을 AI가 분석해 줌으로써 상담사는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슈퍼비전을 받거나 치료 계획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회기들에서 내담자가 약물에 대해 언급했던 부정적 키워드의 빈도를 분석하여, 저항이 높아지는 시점을 파악하는 식입니다.

약물은 내담자의 뇌에 작용하지만, 그 약물을 삼키게 하는 힘은 결국 상담사와의 신뢰 관계에서 나옵니다. 오늘 만나는 내담자의 "약 먹기 싫어요"라는 말을 "내 마음 좀 더 알아주세요"라는 초대로 받아들여 보세요. 그 순간, 지루한 실랑이는 의미 있는 치료적 대화로 변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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