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s Note
- 청소년의 저항을 자율성 보호를 위한 방어 기제로 이해하고 권위적 태도를 내려놓는 '원다운' 전략의 핵심 원리를 설명합니다.
- 무지의 자세, 비자발성에 대한 공감, 내담자의 전문성 인정 등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3가지 실전 기법을 제시합니다.
- 상담 기록 부담을 줄여주는 AI 기술을 활용하여 내담자와의 정서적 상호작용에 온전히 몰입하고 라포를 형성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소년 내담자의 표정, 혹시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푹 눌러쓴 모자,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그리고 상담사의 질문에 툭 내뱉는 "몰라요", "그냥요", "선생님이 뭘 안다고 그래요?"라는 차가운 반응들 말입니다. 이러한 저항(Resistance)은 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하는 장벽이자, 유능한 상담사조차 무력감과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를 느끼게 만드는 주된 요인입니다. 많은 상담사들이 이 순간 '내가 내담자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상담자가 '전문가'라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원다운(One-down)' 포지션을 취할 때, 철옹성 같던 청소년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저항이 심한 청소년 내담자와의 라포 형성을 위한 가장 강력한 역설적 개입, 원다운 전략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1. 왜 청소년 내담자는 상담사에게 저항할까요? : 힘겨루기의 심리학
청소년기의 발달 과업 중 핵심은 '자율성(Autonomy)'의 획득입니다. 이들에게 상담사는 또 다른 형태의 '권위적 성인' 또는 '통제하려 드는 교사/부모'의 대리인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저항은 상담사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로 이해해야 합니다. 임상적으로 볼 때, 상담사가 '도움을 주는 전문가(One-up)'의 위치를 고수할수록 내담자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문제아(One-down)'의 위치로 밀려나게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힘겨루기(Power Struggle)를 유발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원다운(One-down)' 전략입니다. 이는 가족 치료나 해결 중심 치료에서 자주 활용되는 기법으로, 상담사가 의도적으로 '알지 못하는 위치', '배우려는 위치', 혹은 '다소 무능해 보이는 위치'를 점유하는 것입니다. 상담사가 한 발 물러서서 내담자를 '자신 삶의 전문가'로 대우할 때, 내담자는 저항할 대상을 잃고 방어벽을 낮추게 됩니다. 다음은 전통적인 전문가적 태도와 원다운 전략의 차이를 비교한 표입니다.
2. 임상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는 '원다운' 실전 기법 3가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상담실에서 어떻게 '원다운' 포지션을 취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우월성을 인정해주면서 그들의 통찰을 이끌어내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실무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세 가지 핵심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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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호기심을 담은 '무지의 자세' (Columbo Approach)
내담자가 게임 용어나 은어, 혹은 그들만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아는 척 넘어가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반응하지 마세요. 대신 "제가 그 게임은 잘 모르는데, 선생님(내담자)이 보시기에 그 상황이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건지 조금 더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라고 요청하세요. 상담사가 자신을 낮추고 내담자를 '가르쳐주는 사람'의 위치로 올릴 때, 청소년은 우월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입을 엽니다. 이는 내담자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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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권리를 인정하고 비자발성 공감하기
억지로 끌려온 내담자에게 "상담은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라고 설득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습니다. 오히려 "사실 네가 여기 오기 진짜 싫었을 것 같아. 나라도 모르는 아저씨/아줌마랑 방에 갇혀서 이야기하기 싫었을 거야. 내가 널 너무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라고 상담사의 불안을 솔직하게 표현하세요. 내담자가 상담사를 '공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눈치 보는 무해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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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의 전문성(Expertise) 활용하기
청소년 내담자가 문제행동(예: 학교 밖 활동, 반항 등)을 보일 때, 이를 교정하려 들기보다 그 행동이 그들에게 어떤 기능적 의미가 있었는지 물어보세요. "와,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께 그렇게 말하는 건 보통 용기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나였으면 무서워서 못 그랬을 것 같아."와 같은 반응은 내담자의 방어를 해제하고 자신의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를 스스로 탐색하게 만듭니다.
3. 상담사의 불안 다루기 및 전략적 기록의 중요성
원다운 전략을 사용할 때 상담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무능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입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내담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상담자에게 더 높은 신뢰(Trustworthiness)와 전문적 매력(Expertise Attractiveness)을 느낀다고 합니다. 상담사가 통제권을 내려놓는 순간, 역설적으로 치료적 동맹은 강화됩니다.
하지만 원다운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뉘앙스 파악이 필수적입니다. 내담자의 은어 하나, 미세한 표정 변화, 그리고 "그냥요" 속에 숨겨진 텍스트를 놓치지 않으려면, 상담사는 기록에 매몰되지 않고 온전히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에 몰입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AI 기반 상담 기록 및 축어록 서비스는 훌륭한 '보조 치료자(Co-therapist)'가 될 수 있습니다. 상담사가 내담자의 눈을 바라보며 "그게 무슨 뜻인지 더 알려줄래?"라고 묻는 동안, AI는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텍스트로 변환하고 내담자의 핵심 감정 단어를 추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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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언어적 상호작용의 극대화
상담사가 필기를 멈추고 내담자에게 온전히 집중할 때, 원다운 전략의 핵심인 '진정성'이 전달됩니다. AI가 기록을 담당하면 상담사는 내담자의 미묘한 저항 신호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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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은어 및 패턴 분석
최신 AI 기술은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맥락적인 언어나 반복되는 패턴을 정확히 기록합니다. 상담 후 축어록을 검토하며 "아, 이때 이 단어가 이런 맥락에서 쓰였구나"라고 복기하는 것은 다음 회기에서 더 정교한 원다운 질문을 던지는 데 큰 자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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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이고 안전한 데이터 관리
기억에 의존한 기록보다 정확한 AI 기록은 수퍼비전(Supervision)을 받을 때도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되어, 상담사가 자신의 역전이 반응을 점검하고 더 나은 개입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선생님이 뭘 알아요?"라는 내담자의 말은 공격이 아니라, "제발 제 마음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해 주세요"라는 역설적인 초대장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만나는 청소년 내담자에게는 전문가의 가운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호기심 많은 학생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섬세한 대화의 기록은 믿음직한 AI에게 맡겨두고 말이죠. 여러분의 따뜻한 호기심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