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s Note
- 내담자의 인지적 손상 정도와 재활 목표 설정을 위한 병전 지능(Premorbid IQ) 추정의 임상적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 인구통계학적 배경, 웩슬러 지능검사의 유지 소검사, 단어 읽기 능력을 활용한 3가지 핵심 추정 전략을 제시합니다.
- 정량적 데이터와 질적 반응 분석을 통합하여 내담자의 상실된 기능을 정확히 평가하고 존중하는 노하우를 전달합니다.
임상 심리 전문가로서 종합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난관에 봉착합니다. 내담자의 현재 수행(Performance)이 그의 살아온 이력이나 직업적 성취와 현저한 괴리를 보일 때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했던 내담자의 현재 IQ가 85라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는 초심자부터 숙련된 전문가까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본 주제일 것입니다.
특히 치매(Dementia), 외상성 뇌손상(TBI), 혹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한 가성치매(Pseudodementia)가 의심되는 경우, 현재 측정된 지능지수(Current IQ)만으로는 내담자의 인지적 손상(Deficit)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병전 지능(Premorbid IQ)'이라는 기준점입니다. 병전 지능을 정확히 추정하는 것은 단순한 점수 산출을 넘어, 내담자가 잃어버린 기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재활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윤리적이고 임상적인 핵심 과제입니다.
하지만 병전 지능은 직접 측정할 수 없는 '과거의 능력'이기에, 우리는 탐정처럼 여러 단서를 수집하여 가장 타당한 추정치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오늘 글에서는 성인 지능검사(K-WAIS-IV 등) 보고서 작성 시, 임상가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병전 지능 추정의 3가지 핵심 단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병전 지능 추정을 위한 3가지 임상적 단서와 활용 전략
병전 지능을 추정하는 것은 '가장 좋았던 시절(Best Performance)'을 찾아내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인지 기능 중 뇌 손상이나 노화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유지 기능(Hold function)'과 인구통계학적 변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다음은 임상 현장에서 가장 신뢰도 높게 활용되는 3가지 단서입니다.
1. 인구통계학적 변인과 성취 이력의 정밀한 분석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단서는 내담자의 사회적, 교육적 배경입니다. 많은 연구 결과들이 교육 연한(Years of Education)과 직업 수준(Occupation)이 일반 지능(g-factor)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대졸'이라는 사실만으로 IQ 110 이상을 추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내담자의 구체적인 성취 이력을 파헤쳐야 합니다.
- 학업 성취의 질적 평가: 최종 학력뿐만 아니라, 재학 당시의 성적, 학교의 수준, 전공 분야의 난이도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중퇴라 하더라도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거나, 독학으로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다면 잠재 지능은 높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 직업적 복잡성 고려: 단순히 직업의 명칭보다는 해당 직무가 요구하는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를 따져야 합니다. 복잡한 의사결정, 관리직, 전문 기술직 등은 높은 병전 지능을 시사합니다.
- 최고 수행법(Best Performance Method) 적용: 내담자의 과거 기록 중 가장 우수했던 수행을 병전 지능의 하한선으로 간주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변인은 회귀 방정식(Barona Equation 등)을 통해 수치화될 수 있으나, 한국의 교육 열기나 특수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임상가의 정성적 판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2. K-WAIS-IV 소검사 내 '유지 검사(Hold Tests)'의 활용
웩슬러 지능검사의 소검사들은 뇌 손상이나 노화에 따라 점수가 하락하는 속도가 다릅니다. 이를 '유지 검사(Hold Tests)'와 '비유지 검사(Don't Hold Tests)'로 구분하여 분석하는 것은 병전 지능 추정의 핵심 기법입니다.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은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에 비해 뇌 손상 후에도 비교적 잘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어휘(Vocabulary)' 소검사는 병전 지능을 반영하는 가장 안정적인 지표입니다. 내담자가 현재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더라도, '어휘' 소검사에서 정교하고 추상적인 단어 정의를 내린다면 그의 병전 지능은 평균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보고서 작성 시 전체 IQ(FSIQ)가 낮더라도 어휘 환산점수가 12점(평균 상) 이상이라면, "현재의 전반적인 인지 기능 저하에도 불구하고, 병전 지능은 '평균 상'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됨"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단, 실어증(Aphasia) 등 언어 중추에 직접적인 손상이 있는 경우에는 이 지표를 사용할 수 없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3. 단어 읽기 검사(Reading Tests)와 질적 반응 분석
세 번째 단서는 불규칙 단어 읽기 능력입니다. 서구권에서는 NART(National Adult Reading Test)가 표준화되어 널리 쓰이며, 한국에서도 K-NART(한국판 성인 읽기 검사)나 OKRT 등이 활용됩니다. 이는 내담자에게 희귀하거나 철자법이 까다로운 단어를 소리 내어 읽게 하는 방식입니다.
- 결정성 지능의 반영: 어려운 단어를 정확히 발음한다는 것은 그 단어를 과거에 접하고 학습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현재의 인지 처리 속도나 문제 해결 능력과는 별개로 과거의 지적 능력을 반영합니다.
- 높은 상관관계: 연구에 따르면 단어 읽기 능력은 병전 IQ와 .70 이상의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 검사 태도 및 언어적 뉘앙스(Nuance): 표준화된 읽기 검사 외에도, 면담이나 검사 도중 내담자가 사용하는 어휘의 수준, 문장 구사력, 유머의 활용 등을 질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점수가 낮게 나왔더라도, 내담자가 검사자와의 라포(Rapport) 형성 과정에서 고차원적인 비유를 사용하거나 논리적인 자기방어를 한다면 이는 높은 병전 지능을 시사하는 강력한 질적 단서가 됩니다.
임상가는 이러한 읽기 검사 결과와 실제 면담에서의 언어적 수행을 종합하여, 수치화된 검사 결과가 놓칠 수 있는 내담자의 잠재력을 포착해야 합니다.
결론: 데이터와 직관의 통합, 그리고 기술의 활용
병전 지능 추정은 단순히 과거의 숫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상실된 가능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1) 교육 및 직업 이력, (2) 지능검사 내 유지 소검사(어휘, 상식)의 수행, (3) 단어 읽기 능력 및 언어적 질적 분석이라는 세 가지 단서를 삼각 측량(Triangulation)하여 가장 타당한 추정치를 보고서에 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담자와 보호자에게 현재의 어려움이 그들의 본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설명하고, 재활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담 및 검사 장면의 정확한 기록(Recording)은 필수적입니다. 특히 '어휘' 소검사나 면담 과정에서 내담자가 보여준 미묘한 언어적 뉘앙스, 사용한 고급 어휘, 문장의 구조 등은 채점지(Record Form)에 요약된 점수만으로는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AI 기반 상담 기록 및 축어록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은 임상가의 통찰력을 높이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AI가 검사 중 오간 대화를 정확하게 텍스트로 변환해 줌으로써, 임상가는 기록에 대한 부담을 덜고 내담자의 비언어적 태도와 미세한 수행 차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축적된 텍스트 데이터를 통해 내담자의 언어 복잡성을 객관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어 병전 지능 추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임상가를 위한 Action Plan
- 다각적 정보 수집: 초기 접수 면접지(Intake sheet)에 학업 성적, 주로 읽는 책, 과거의 취미 활동 등을 구체적으로 묻는 항목을 추가하세요.
- 프로파일 분석의 습관화: 전체 지능지수(FSIQ)에 매몰되지 말고, 어휘-기호쓰기 점수 차이 등 소검사 간 분산(Scatter)을 통해 병전 기능을 가설 검증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 스마트한 도구 도입: 검사 및 면담 내용을 AI 음성 기록 서비스로 남겨, 내담자의 언어적 수행을 '다시 듣기' 하거나 텍스트로 분석하여 질적 평가의 근거로 삼아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