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s Note
- 상담사가 내담자의 트라우마에 공감하며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자신의 안전감, 신뢰, 통제감 등 인지 도식에 영구적인 부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은 단순한 직무 소진과 달리 상담사의 영혼이 입는 깊은 부상임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 대리 외상으로부터 상담사를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상담을 위해, 트라우마 노출 조절 및 경계 설정, 동료 슈퍼비전과 지지 체계 활용, 그리고 자신의 신체적/정서적 반응을 자각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회적 연결을 이어가는 'ABC 자기 돌봄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 특히 상담 기록 과정에서의 트라우마 재노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AI 기반 상담 기록 및 축어록 서비스를 활용하여 고통스러운 내용 반복 청취 시간을 단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 확보를 통해 상담사의 감정 소모를 줄여 대리 외상 예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상담실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담자가 털어놓았던 참혹한 성폭력 피해의 디테일이나 가정 내 학대의 끔찍한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혹은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지만, 내담자의 비명이나 공포가 섞인 악몽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적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상담 전문가로서 내담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공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치료자가 내담자의 트라우마 경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치료자 자신의 안전감, 신뢰, 통제감과 같은 인지 도식(Schema)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닌, 상담사의 영혼이 입는 부상입니다.
특히 성폭력이나 아동 학대와 같은 고강도 트라우마 사례를 다룰 때, 상담사는 '내가 내담자를 충분히 돕고 있는가?'라는 죄책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상담 기록을 정리하는 순간조차 고통스러운 재경험을 반복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무거운 주제를 임상적, 윤리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하고, 건강한 상담사로 롱런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대리 외상, 단순한 직무 소진(Burnout)과는 다릅니다: 핵심 분석
임상 현장에서 많은 상담사가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 소진(Burnout), 그리고 이차적 외상 스트레스(Secondary Traumatic Stress, STS)를 혼동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감별은 적절한 대처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대리 외상은 Constructivist Self-Development Theory (CSDT)에 따르면, 트라우마 피해자의 경험에 반복적으로 공감하며 노출됨으로써 치료자의 내적 경험과 세상에 대한 인지적 틀(Worldview) 자체가 부정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내담자의 신념이 상담사에게 전이되는 것입니다.
반면, 소진은 일반적인 직무 스트레스의 누적 결과이며, 이차적 외상 스트레스는 외상 사건을 간접 경험한 후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PTSD 유사 증상을 말합니다.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아래 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폭력 및 학대 피해 상담에서 상담사는 '목격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때 발생하는 강력한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는 상담사로 하여금 '구원자 환상'에 빠지게 하거나, 반대로 압도적인 공포감에 휩싸여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 상담사의 약 15~20%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대리 외상 증상을 경험한다고 보고됩니다. 악몽과 불안은 뇌가 처리하지 못한 간접 외상 정보가 REM 수면 중에 침습하는 전형적인 징후입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상담사는 내담자와의 정서적 연결을 차단하거나(해리), 상담 자체를 회피하는 윤리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상담을 위한 임상적 대처 전략 및 보호 요인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필연적인 직업적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상담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대리 외상은 상담사의 '자질 부족'이 아니라, '공감 능력의 필연적 비용'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음은 임상 심리학적 관점에서 제안하는 3가지 핵심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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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도적인 '외상 노출 조절'과 경계 설정 (Boundary Setting)
가장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 콘텐츠에 대한 노출 총량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배정하는 고위험군 트라우마 사례(성폭력, 학대 등)의 비율을 제한하세요. 또한, 상담 세션 중 내담자가 지나치게 상세하고 감각적인 묘사(Graphic detail)를 할 때, 치료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적절히 개입하여 그라운딩(Grounding) 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내담자의 재외상화를 막고 상담사를 보호하는 이중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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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료 슈퍼비전과 지지 체계의 적극적 활용
"이 이야기는 너무 끔찍해서 동료에게도 말하기 미안해."라는 생각으로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십시오. 트라우마 전문 슈퍼비전은 대리 외상의 해독제와 같습니다. 슈퍼비전에서는 사례의 내용보다는 상담사가 느낀 '충격, 혐오, 무력감' 등의 역전이 감정을 다루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안전한 동료 그룹 내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이 해소되고 인지적 왜곡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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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BC 전략을 통한 자기 돌봄 (Awareness, Balance, Connection)
- Awareness (자각): 자신의 신체적, 정서적 반응을 모니터링합니다. 악몽, 식욕 변화, 과민 반응 등을 조기에 포착하세요.
- Balance (균형): 일과 삶의 철저한 분리입니다. 퇴근 후에는 상담사라는 정체성을 벗고 온전히 '나'로 돌아가는 의식(Ritual)을 만드세요. (예: 퇴근길에 특정 음악 듣기, 옷 갈아입기 등)
- Connection (연결): 트라우마가 단절을 가져온다면, 치유는 연결에서 옵니다. 비상담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세상에는 고통 외에도 즐거움과 평범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뇌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상담 기록의 딜레마 해결: 기술을 통한 노출 최소화
상담사들이 대리 외상을 가장 심하게 겪는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축어록(Verbatim) 작성 및 상담 기록' 시간입니다. 상담 회기 중에는 치료적 자세를 유지하며 방어했지만, 혼자 남겨진 공간에서 녹음 파일을 반복 청취하며 기록을 정리할 때 트라우마의 내용이 여과 없이 상담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재노출(Re-exposure)'의 과정이며, 뇌에 트라우마 기억을 강화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신 AI 기반 상담 기록 및 축어록 서비스의 활용은 단순한 행정 업무 효율화를 넘어 상담사 보호를 위한 임상적 도구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 트라우마 재노출 시간 단축: 60분의 고통스러운 내용을 3~4번 반복해 듣는 대신, AI가 작성한 초안을 눈으로 빠르게 검토함으로써 청각적/정서적 자극의 강도와 지속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 객관적 데이터 확보: 감정에 압도되어 놓칠 수 있었던 내담자의 핵심 키워드나 반복되는 비합리적 신념 패턴을 AI가 객관적인 텍스트로 추출해 줌으로써, 상담사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물러나(Detachment) 임상적 통찰력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 에너지 보존: 기록 작성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절약하여, 상담사 자신의 심리적 회복과 자기 돌봄(Self-care)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기술의 도입은 상담사가 '기록 노동자'가 아닌 온전한 '치유자'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방패가 되어줍니다. 대리 외상의 위험 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은 곧 내담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언과도 같습니다.
오늘 밤은 부디 악몽 없이 편안한 잠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상담사 여러분의 안녕이 곧 내담자의 치유입니다. 대리 외상 예방을 위해, 지금 바로 당신의 상담 기록 방식과 자기 돌봄 루틴을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